육.체.노.동.

낙서장 2008. 9. 1. 10:23
요즘
내 생활이 참 무기력했다.
일이 힘들고, 몸이 무겁고, 재미가 없고..

1.
엊그제인 토요일은 일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잠을 안잤다.
일 하고, 풋볼로그에 글 쓰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새벽5시가 된 것.
순간 뭔가 변화된 생활을 해보면
내게 무슨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한 30분 했고 무얼할까 무얼할까 생각하다가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찾은 곳은 인력사무소.

2.
소위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설현장 노동이 해보고 싶어졌다.

건설현장 노동은 내게 참 익숙한 일이다.
제일 처음 해본 것은 고등학교 때.
경험삼아, 장난삼아 해본 건설현장 노동은 항상 쉬운 일만 해서
힘든걸 몰랐었다.
인력사무소 아저씨가 어린 학생인걸 알고는 일부러 쉬운곳에만
보낸 것일지도.

대학1학년 때는 토목공학에 대한 어린 욕심에 뭔가 도움이 될거란 생각으로
여름방학 두달내내 건설현장에서 먹고자는 알바를 했었다.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가 있던 1996년 신탄진 부근의 현장이었다.
몸으로 떼우는 일과 이론은 다를거라 생각하겠지만 도움이 되긴 되었다.
금강위에 놓여진 고속도로 다리위에서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무너질 듯 흔들거리는 것을 직접 느끼며 교량에 대한 것을 찾아보게 되었고
도로 구배같은 것도 대강이나마 알게 되었고..

대학 이후 용돈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 없는 나로선
대학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 위해서도 좋은 알바였고
어디론가 가고 싶을 때 여행경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도 좋은 알바였다.
기간이 정해진게 아니라 하고 싶을 때만 하면 되는데다가
돈을 하루하루 일당으로 받는 장점도 있었고,
하루 일당이 다른 일에 비해 꽤나 많았던 것도 매력 있었고..

3.
무튼,

그렇게 찾은 인력사무소에서 내 이름이 불려지고 한무리의 아저씨들과
승합차에 올라 어딘지 모를 목적지로 향하게 되었다.
어디에 있는 어떤 건설현장인지 묻질 않았다.
차라리 그러는게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어딘지 모를 곳에 대한 두려움과 간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을
만끽하고 싶었나보다.

승합차는 달리고 달려 익숙한 도로로 접어들었다.
1번국도.
예전에 연구소에서 일할 때 출장을 제일 많이 왔던 도로.
1번국도를 타고 가다보니 출장 와서 머물렀던 모텔들도 보이고.
데이터 수집을 위해 새벽과 야간에 도로변으로 나와
차들이 다니는 도로위에 튜브 깔고 노트북 연결하고 카메라 설치했던

그 장소들까지 정학히 기억이 나더라.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4.
한참을 가더니 조치원까지 갔다.

외진 곳에 한창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데 내가 일할 곳은
그 사이에 지어지고 있는 커다란 빌딩.
아침 7시부터 이것저것 옮기고 움직이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가 순탄치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두시간을 열심히 땀흘리고 오전 간식 먹는 시간.
식당차가 떡국을 끓여왔다.
먹었다.
아저씨들이 물어본다.

"퍼블씨는 이런일 안해봤을 것 같아..
그래도 어떻게 안전화(노가다용 신발)는 사서 신고 왔네?"

갑자기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새어나왔다.

"영업직을 하는데 실적이 안좋아 월급이 적어요..
그래서 돈좀 벌려구요.. 안전화는 어제 샀어요"

그 안전화.
실은 우리 회사꺼 내가 집에 하나 가져다 놓은거였다.


5.
그리곤 또 시간 가는줄 모르고 땀흘리고 어느새 점심 먹고..

잠깐 쉬고 미친듯 일하고 오후 간식 먹고..
그리고 마무리하고 오후 5시반에 모든 일을 끝마쳤다.
땀을 어찌나 많이 흘렸는지 옷이 축축했다.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가려고 다시 승합차쪽으로 가는데
마침 잠깐 들른 시공회사 직원이 날 알아본다.

"엇!! 김과장님 아닙니까.."

평소에 친분이 있던 다른 회사 직원..
쳇..
아무도 모르게 간만에 일탈을 해보나 싶었는데
이렇게 아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덕분에 같이 일하러 간 아저씨들에게 내가 건설회사 직원인게 들통났고
왜 노가다 뛰러 나왔냐는 질문에 한참을 시달려야만 했다.


6.
아무리 경험을 해본 노동이지만

오랜만에 하니 기분이 새롭더라.
회사에선 그저 뒷짐지고 현장 한번 쑥 둘러보고
(어차피 건설 현장도 자주 안간다..
사무실에 있다가 심심하면 한번씩..ㅋㅋ)
인부 아저씨들 달래고 혼내고 얼르면서 일 시키고.
그랬는데 일상과는 다른 하루를 보내고 나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뭔가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는 느낌이었을까.
집에 돌아오는 길
내손에 있던 하루 일당 6만원이 금덩이보다 더 눈부시더라.
피곤해서 쉬고싶은 휴일이었지만
나로선 정말정말 뜻깊고 보람된 하루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토요일 잠 못자고
새벽에 나가서 힘든 일을 해서였는지
어젠 집에서 일찍 곯아떨어졌다.
간만에 정말 달콤한 잠을 즐긴듯....^^
상쾌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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