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는 아니고,

출퇴근 하는 길에 미용실이 하나 있다.

주로 아무 생각이 없이 그 앞을 지나곤 하는데 얼마전부터 그 미용실에 자꾸 눈이 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예상할 수 있는 여러분들의 생각.

 

'미용실 아가씨가 아주 섹쉬하고 예쁜가보다..'

 

ㅋㅋ

 

근데 그것때문은 아니고 미용실 안에는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와 함께 소파에서 자리를 지키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있었기 때문.

며칠간 그 할아버지의 모습을 계속 본 나로선 이래가지고 손님들이 있겠나..싶었었다.

물론 그 영감님을 비하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여성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는 미용실로서 백발의 할아버지가 있다면 조금은 꺼려지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오늘 퇴근길에 비가 아주 많이 쏟아졌다.

버스 타기 애매한 거리에 살고 있는 나는 그냥 비를 맞으며 걸어가기로 작정하고 열심히 걷고 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잠시 그 미용실 문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그 영감님께서 잠시 들어와 커피 한잔 하라고 하는거였다.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영감님의 배려를 또 거절하면 안될 것 같아서(ㅋㅋㅋ) 잠시 들어가서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그렇게 들른 미용실에서 난 그 영감님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모든 손님들의 머리를 책임지는 헤어드자이너~

바로 그 영감님이 미용실 주인이고 기술자였던거다.

 

헉!!

 

뭐지?

 

잠시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동안 짧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영감님이 미용기술을 배우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30년 넘게 이발소에서 일하고 이발소를 운영했던 영감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렇게 즐거웠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미용실만 찾는 요즘 이발소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기고 심심해져서 이발소 문을 닫을까 생각했지만 결국 할아버지는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열정으로 미용기술을 배우게 되었고 미용사 자격증을 획득, 결국 이발소를 미용실로 바꾸게 된 것이었다.

 

그리곤 배움의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미용실을 차린 이후 하루하루가 다시 즐거워졌다며 허허허 웃으시는데 정말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감님의 삶을 보며 난 정말 뭐 하면서 사는 놈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한 분이다.

다음부터 머리를 깎을 땐 그 분께 맡겨야겠다.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풋볼로그 부활.  (10) 2009.07.21
대전은 참 살기 좋은 동네..  (18) 2009.07.16
뚱뚱한 남자로 살아간다는건...  (16) 2009.07.12
플라이하이님 이벤트 인증샷.  (21) 2009.07.08
계주 - 나에게 사진은 [ ] 이다.  (14) 2009.07.01

설정

트랙백

댓글